5. 선불교와 그리스도의 궁극성

독일 시인들의 영혼을 흔들어 놓았던 아름다운 라인 강 상류 에 잇는 스위스 최대의 문화도시 바젤은 내 아내와 함께 철학과 신학, 동양의 대승 불교와 현대신학 사이를 헤메이며 우리의 사 색을 성숙시켜 나갔던 잊을 수 없는 마음의 고향이다. 시간이 나 면 홀바인의 피에터(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와 로댕과 짜꼬메띠 의 조각을 감상했으며, 에라스무스와 야스퍼스의 무덤을 찾아가 명상에 잠기었다. 평생 비서로 헌신한 키르슈바움과 함께 쉬고 있는 바르트의 무덤은 나그네로 왔다가 영원한 나그네로 떠난 야 스퍼스의 무덤 가까이에 있었다. 바젤대학교는 두 분의 "칼"이 신 학과 철학을 강의하고 있을 때 전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이 때 영국에서 열렸던 국제 종교사학회 총회(제13회,1975)에 참석하였 던 일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거기서 우리는 "힌두교의 알지 못하는 그리스도"의 저자 레이문도 파니카와 "유교와 기독교"를 쓴 중국여자 신학자 줄리아 칭을 만났다.
바젤에 있는 5년동안 우리는 막내아들 재은이를 선물로 얻었 다. 우리 두사람의 논문은 이 귀여운 어린 생명과 함께 해산하는 수고를 거쳐서 얻은 열매였다.
내 논문 "기독교와 선불교의만남에서 본 그리스도의 궁극성의 문제"(1975)는 세 신학자, 야기 세이찌(일), 칼 마이켈슨(미), 후릿 츠 부리(스위스)의 선불교와의 만남과 기독론에 초점을 두고 연 구한 것이다. 나는 유불선 세 종교에 의하여 유동적 통일을 이루 고 있는 동양의 다원적 종교적 상황을 선불교의 "절대무" 개념으 로 특징지을 수 있다고 보았다. 敎外別傳, 不立不案를 말하고 殺 儒殺祖를 주장하는 선불교 밑바닥을 흐르고 있는 것은 근원적인 자기에로 돌아갈 것을 촉구하는 비교의화와 비신화와의 충돌이었 다. 동양의 문화적 사회적 상황을 특징짓는 또 하나의 요소는 서 구의 충격에 의한 근대화의 과제다. 선불교와 근대화라는 두 초 점에서 볼 때 마르크스주의는 니이체나 프로이드와 함께 종교적 상징은 깨쳐야 할 거짓된 실재라고 보고 탈신화화를 말하며 근대 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동양이 갈구하고 있는 자율적인 개체인격 의 자각과 실현을 불가능하게 하는 자아상실에로 이끌어 간다고 보아서 바람직한 것이 못된다. 자유가 있는 정의 질서와 전통의 단절이 없는 해방을 갈구하고있는 동양에서 불교지성들이 하이데 거와 야스퍼스를 좋아하고 틸리히의 비문자화(상징적 해석학)와 불트만의 비신화화(실존론적 해석학)을 높이 보는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양자는 다함께 타종교를 바르트처럼 비신앙이나 악 마로 보지 않는다. 틸리히의 궁극적 관심으로서의 "절대적 신앙" 은 신학적 원경밖에 있는 만인에게 타당한 보편적 가능성이다. 불트만은 실존적 자기 이해의 관점에서 교회밖에 있는 포괄적인 "초월의 공동체"를 인정한다. 그러나 양자는 절대적 신앙과 기독 교 신앙, 초월의 공동체와 기독교 공동체와의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와 거리가 있다고 본다. 오직 그리스도신앙으로만이라는 프 로테스탄트의 원리는 핵심에서 타종교와의 대화를 불가능하게 하 는 무엇이 있는 것이다. 이 원리에 의하면 타종교에는 절대로 구 원이 있을 수 없다. 타종교는 다만 복임이라는 대답을 받아들이 기 위한 물음과 율법으로서 부정적인 준비단계일 뿐이다. 불트만 이 그리스도 신화를 본래적 자아가 되게 하는 유일회적인 종말론 적 사건이라고 초자연주의 적으로 해석하며, 실존론적 해석을 철 저화하지 못하였다고 하는 논리적 불철저성의 과오를 지적한 이 는 후릿츠 부리와 슈버트 오그덴이었다.
부리의 "비케리그마화"와 오그덴의 "신화 없는 그리스도"는 어느 면에서 불트만의 비신화화의 철저다. 두 신학자는 불트만이 받고 있는 루터의 전적 타락의 원죄교리 "인간은 스스로 구원할 수 없다"와 칭의교리 "신의 은총은 오직 나사렛 예수에게서만 배 타적으로 계시되었다는 신화의 잔재라고 보며 인간은 자유와 은 총을 인간의 보편적 가능성의 선물로 경험한다고 한다. 야스퍼스 가 밝히듯 신을 유일회적으로 특정한 시공에 나타났다고 한정하 며 예수 이신(二神)이라고 하는 것은 신을 세계사 속에서 대중화 시키는 것이라고 본 것이다. 게시신앙의 대상화가 만들어 내는 초월의 객관성과 보편성은 기독교 시학의 우상숭배요 원죄다. 본 인은 부리와 오그덴 타입의 신학이 계시가 아니라 인간 실존의 자기이해에서 출발하는 보다 개방적인 아래로부터의 낮은 기독론 을 가능하게 할 뿐 만 아니라, 동양적인 무의식, 존재 신비에 침 참하지 않고 세계에서 획일적으로 사는 실존의 진리와 신앙의 합 리성을 밝히는 것으로, 동양의 근대화의 과제에도 크게 공헌한다 고 보았다. 어떻게 하면 기독교 신학은 선불교와의 만남에서 계 시신앙의 배타적 절대성을 일방적으로 주장하지 않고 동양의 인 간화를 위하여 저들과 열려진 대화를 하면서 그리스도의 궁극성 을 주장할 수 있을까? 본인은 이 과제와 시름하며 내스승 칼 마 이켈슨의 역사로서의 신학과 야기 세이찌의 장소적 신학을 살펴 보았다.
불트만과 고가르텐에게서 배우면서 마이켈슨은 그리스도는 복 종에로의 부름이며 역사의 종국으로서 유일회적인 종말론적 사건 이라고 한다 자연범주를 가지고 형성되었던 양성 기독론을 부정 하고 역사범주를 통하여 재해석된 간접적 기독론을 주장하였던 이 급진 신학자에게 있어서 실존론적 해석학과 아포리아는 비신 화화의 과제가 철저화되지 않는데 있다. 그의 보수성은 선불교를 배타적으로 정복해야 하는 악마적인 유혹이라고 할 때 잘 나타난 다.
일본의 장소적 신학자 야기의 신학의 비밀은 "근저는 실존에 서행한다"는 데에 있다. 기독교와 불교와의 접촉점을 종교적 실 존이라고 보던 불트마니아너의 입장을 넘어서 그는 전향 이후의 하이데거나 서전(西田) 철학의 체험, 장소적 존재론이라고 본다. 예수의 수육과 십자가와 부활은 역사 위에 서 있지 않고 장소 (法)위에 서 있으며, 절대주의 장소를 나타내는 징조이고 장소에 의 복종이며 장의 계시이다. 구원의 근거는 예수의 십자가라는 객관적인 구속사적 과거사건에 근거되지 있지 않고 인간 실존의 보편적 가능성의 존재론적인 근거인 절대무의 장소로서의 그리스 도에 있다. 야기의 장소적 기독론에서 기독교 신앙은 형이상학적 토포스 속에, 그리스도의 인격은 그리스도의 원리 속에 해소된다. 결국 실존의 자유를 실존의 존재론적 근거인 무의 장소에 의해서 만 성립된다고 보는 야기는 인간실존의 무제약적인 자유와 책임 을 알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성인의 세계에 사는 현대인은 존재 의 모태에 매달려 있는 자연의 노예가 아니다.
마이켈슨과 야기의 신학적 아포리아를 해결해 준 이는 그리스 도라는 이름을 유일회적 종말론적 사건이나 절대무로서의 장의 계시가 아니라 "인격적 책임성의 무제약성을 나타내는 신화적 표 현"이라고 본 후릿츠 부리였다. 그리스도라는 이름이 신화적으로 상징하는 것은 바로 인간의 진리, 책임적 자아와 책임적 공동체 의 진리이다. 그러기에 무제약적인 책임성이 있는 곳, 사랑이 있 는 곳, 그 어디에나 그리스도가 계신다. 그리스도는 결코 세계사 의 알파(종교사 신학)와 오메가(정치신학)에 있지 않고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무제약적 책임성이라는 이름 밖에 천하 인간이 구 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다. 이 복음 이 동방의 밝은 빛 "은자의 나라 " 한국의 빛이 되기를 !